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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결자해지, 국론 분열과 화합

해람시론(海覽時論)

사람의 인품이나 품격이라고 할 때 쓰는 品 자는 口 자가 나란히 놓이고 또 쌓여서 된 글자다. 다시 말해 평소의 말이 이어지고 쌓여서 그 사람의 인품을 이룬다는 의미다. 결국 우리가 살아오며 한 말과 행동이 모두 어우러져 한 사람의 품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난달 나라의 대통령 모친이 별세하고 조촐한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소시민들의 감동이 여기저기서 전해진다. 우리 사회 권력에 다가서 있는 사람들이 관행을 핑계 삼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언행이 많았던 터라 말과 행동으로 옳은 규범을 세우는 문 대통령을 보면서 우린 참으로 품격 있는 대통령을 가진 국민이라는 행복감과 아울러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픔도 들었다.

모친이 노환으로 지방의 한 병원 일반 병실에 입원 했었는데 담당 의사도 주변 환우의 가족들도 문 대통령이 병실을 찾아갔을 때야 비로소 대통령의 모친이란 걸 알았다고 한다. 장례 절차도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과 조용하게 치르기로 하고 모든 조문이나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했다. 고인의 뜻도 상주인 대통령의 결정도 마땅히 존중되었으면 했다. 굳이 조문도, 번거롭게 조화도 보내지 않는 것이 서로 품격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멀리서 찾아온 야당 대표들의 조문만큼은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정치적 소신이 다르고 불편한 관계를 만들던 이들이라도 모친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예를 표하겠다 하니 사양하고 돌려보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예로부터 상중에는 문 앞에 ‘忌中’이라고 쓴 등을 걸어 서로 삼가고 조심하는 우리 문화였다. 문상도 입관한 후에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입관도 하기 전 병실에서 영구를 모시고 나가는 영상을 뉴스에 그대로 내보내는 방송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언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의도 염치도 통제장치도 없는 막무가내의 저 습관적 일탈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기자들의 분별력과 자질이 부족하면 데스크에서 걸러내든가 절제를 시켜야지 오히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살벌한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적 집회 시위 현장과 검찰의 정치 지향적 선택 수사를 이권에 따라 확대 재생산해 국론분열을 앞장서 부추긴 세력이 바로 기울어진 언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언론마다 추구하는 노선이 있고 그에 따른 편집이라는 장치를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다. 제목 하나 뽑는 것과 사진 한 장으로도 얼마든지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의중을 드러낼 수 있기에 말이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구조의 이익 창출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우선돼야 할 저널리즘의 근본정신 곧 본분과 사명을 망각한다면 감히 언론이라 말할 수 없다.

언론의 지엄한 사명 중 그 첫째가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보도다. 작위적인 뉴스의 취사선택이나 은폐를 말하는 ‘게이트키핑’ 이론의 사례를 보면 언론의 사실 왜곡은 극과 극을 달린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맹견에게 쫓기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파키스탄 청년에 관한 기사 제목이 ‘이슬람 과격 단체 일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남자, 무고한 미국의 개를 잔인하게 죽이다’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뒤집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렇게까지 갈 수 있는 언론 현실을 안다면 대중들은 언론 보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뉴스의 주요 사안들을 대할 때 전후 배경을 인식하고 냉철한 눈으로 또한 다양한 채널로 행간을 살펴야 할 것이다.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던 영국 ‘맨체스터가디언’ 편집인 ‘스콧(C.P.Scott)’의 격언은 언제부터 우리 언론에는 거추장스러운 말이 되고 말았다. 전화 한 통화나 최소한의 현장 확인만 하면 검증할 수 있는데도 모르쇠로 버티고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언론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언론의 횡포와 질주를 막아보려고 오죽하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 KTV 국민방송으로 일일이 반박하고 바로잡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겠는가?

두 번째로 국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이 언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온갖 혜택과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러한 순기능을 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가?

KBS가 자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본 산케이신문 구보타 해설위원의 ‘한일문제는 문재인 씨 역사관 탓’이라고 한 문제 발언을 여과 없이 자막으로 방송해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았던 사례도 그렇다. 국민들에게 미치는 정서와 국격을 생각했더라면 최소한 대통령에 대한 호칭은 검증하고 내보냈어야 했을 텐데……. 사소한 것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한일관계를 더 어렵게 갈라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언론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식당이나 목욕탕 같은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온종일 보수 종편 방송을 틀어놓고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슨 방송을 시청하든 그것은 자유지만 출연한 패널들이 어떤 성향의 말과 행동을 해오던 사람인지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그들이 쏟아내는 편향된 이야기를 허구한 날 듣다 보면 일반 대중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에 십상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그렇대’라는 말을 일말의 주저 없이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뉴욕 센트럴파크의 그 청년처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 쉬운 구조가 되고 말았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석 달째 끌어오고 있는 조국 장관 가족 관련 보도에서도 그런 행태가 보인다. 검찰과 수구 정치인 그리고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그 가족을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인 양 단죄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보수와 진보의 심각한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겐 최소한의 방어권도 주지 않는다. 가족들이 외롭게 SNS를 통해 해명하고 있는데 그것마저 언론 플레이한다고 입을 틀어막지 않았던가? 주류 언론이 외면하니 소셜미디어라도 거들지 않으면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몽둥이질 당하는 판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언론이 형평에 맞는 공정한 보도를 하고 다른 쪽에도 최소한의 반론 기회를 주면 그 판단은 국민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언론의 기능이 바로 부패한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이다. 그런데 언론이 오히려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같이 썩어가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불신과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광고가 많이 나오는 지자체나 대기업 비리는 가볍게 단신 처리로 넘기고 별 재미없는 정부는 물러날 때까지 흔들어대는 그들이다. 적자가 나면서도 재벌이나 대기업이 신문과 종편방송사를 붙잡고 있는 이유도 자신들의 구린 부분을 알아서 방어해 주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익보다는 정파나 조직의 이익을 앞세워 분열과 갈등으로만 치닫고 있는 우려할만한 모습이다. 우리 선조들은 국난에 처할 때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명분과 국익을 앞세우지 않았던가? 오늘날은 정치인들부터 국민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뒷전이고 잿밥에만 신경 쓰고 있으니 국회를 믿다가는 세월 다 가고 말 것이 뻔하다. 이번에 법무부가 형사사건 피의사실 공개 금지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는 일이나 검찰에 대한 법무부 차원의 감찰 결정 등은 좋은 생각이다. 인권 보호와 언론의 가짜뉴스 차단까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제도로 보이기에 속히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수십 년 험난한 세월에 계엄과 억압, 불법적인 고문과 조작, 은폐, 희생과 인고의 시간을 이기고 이루어낸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가 그 왜곡된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자유한국당이 영입하려다 삼청교육대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박찬주 대장 같은 5공 시대 사람, 추징금 낼 돈은 없어도 골프 치러 다니며 ‘광주사태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전두환 같은 이가 아직도 큰소리를 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계엄령 선포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사람들이 나라와 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아직도 진실이 거짓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 나라의 모든 부조리를 끝까지 발본색원하고 또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힘을 가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깨어있는 국민이 지켜보고 같은 목소리로 외칠 때 언론은 물론 정치인도 사회 지도층도 변화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스스로들 각자의 본분과 사명을 지키고 감당한다면 다양한 이념적 갈등을 더 높은 차원으로 통합해 나갈 수 있는 아름다운 화쟁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동이불화하던 소인배들의 세상이 화이부동의 화합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의 나라로 변화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대통령 모친 장례식장에서 여야 대표가 예를 다해 위로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조문을 받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상식과 정도가 통하는 날이 올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해람(언론인·자유기고가)

미래로신문  mro@mrr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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